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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연재3] 십자성호 – 고난과 축복

작성자 아모스 | 날짜 2019/03/17 | 첨부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그리스도교의 여러 교파를 나누는 방법은 여럿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전례 전통에 따라 전례 교회와 비전례 교회로 나누는 것이다. 전자는 성공회, 정교회, 천주교, 그리고 자주 루터회를 포함한다. 후자는 개신교 대부분인데, 요즘은 개신교도 전례 전통을 회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십자성호는 이런 구분을 잘 보여준다. 전례 교회에서는 기도를 시작할 때나, 성당에 들어설 때, 전례의 여러 순서에서 예를 표하거나, 마음을 준비할 때, 자기 몸에 십자가 모양을 긋는다. 이 행동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초대 교회 때인 3세기 초 기록으로 보아, 더 오래됐으리라 추정한다.

십자성호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십자가 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되새기는 행동이다. 그래서 성호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 말이 늘 따라 붙는다. 굳이 말이 없더라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사건이 핵심이다.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모아서 몸에 성호를 긋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십자성호는 고난 속에서 피어난 축복을 상징한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대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겠다는 다짐을 우리 몸에 표현한다. 또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고난 끝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복락이 우리에게 펼쳐진다는 뜻이다. 사제가 십자성호로 축복할 때, 모두 성호로 응답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긋는 성호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축복을 뜻한다. 이 축복의 십자성호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방법은 세 손가락을 모아서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십자가를 작게 세 번 긋는 것이다. 이 전통이 더 오래됐다. 초대 교회는 복음을 읽을 때 이 방법을 적용했다. 생각과 언행과 마음 씀씀이가 자기 생각이 아니라 복음 말씀과 십자가의 뜻에 따라 이뤄지도록 축복하고 다짐한다. 성사 때 이마에 기름을 바르며 축복하거나 재의 수요일에 재를 이마에 바르며 십자가를 그리는 것도 이 전통에서 유래했다.

둘째 방법은 세 손가락을 모아서 이마와 가슴(또는 배), 두 어깨에 크게 긋는 것이다. 이것은 원래 바닥에 온몸을 엎드리는 오체투지에서 나왔다고 본다. 몸이 땅에 닿는 부위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다섯가지 상처와 일치하고,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복종하여 헌신하겠다는 다짐이다. 아직도 정교회는 몸에 성호를 그은 뒤 마지막에 허리를 굽혀 다섯 손가락을 땅에 대는 관습을 유지한다. 큰 성호는 공동체 전례 순서 곳곳에서, 그리고 개인 기도 시작과 마침에 언제든 사용한다. 성호를 긋는 때를 꼭 특정하거나 제한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성당에 들어올 때, 기도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삼위일체의 이름을 말할 때, 영성체를 준비하고 마칠 때, 그리고 축복을 받을 때 꼭 하도록 한다.

교부들은 몸 전체에 긋는 십자성호를 친절하게 풀이해 주기도 했다. 머리에서 가슴(배)로 먼저 내려오는 순서는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신 하느님의 성육신을 뜻하고,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긋는 순서는 세상 시작에서 세상 끝으로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뜻했다. 동방교회는 지금도 이렇게 긋는다. 어떤 연유에선지 10세기 이후 서방교회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로 성호를 그었다. 그에 따라 그 부분의 풀이도 달라졌다. 왼쪽에 있는 세상의 ‘염소’를 오른쪽에 있는 천국의 ‘양’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으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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