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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신앙연재 - 시작과 끝, 깨어 견디는 대림의 신앙

작성자 아모스 | 날짜 2018/12/01 | 첨부

#전례력_연재

시작과 끝 – 깨어 견디는 대림의 신앙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시절이 혼란할수록 모든 문제를 단번에 풀어줄 해결사를 기대하기 쉽다. 전능한 해결사를 바라는 마음은 삶의 당혹감과 절망감 때문에 나온다. 이때 절박한 마음을 파고들어 ‘종말 사상’을 뒤집어쓴 사이비 종교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고는 한다. 그 역사가 길고 자주 되풀이 된다. 예수님 때도 그랬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단호히 말씀하셨다. “그때는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현실의 어려움에서 나온 나약한 기대는 현실 도피일 뿐,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교회 전통은 대림절 신앙 안에서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풀어갔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예수의 삶 속에서 일하셨다. 연약한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 안에서, 우리가 인간의 삶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경험하도록 초대하셨다. 세상 권력이 욕망하는 성취와는 달리,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라는 실패 안에서 부활을 이루시어 구원을 선포하셨다. 이것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임마누엘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이다. 새로운 세상은 예수님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탄생했다. 교회 전통이 교회력을 마련한 까닭은, 주님의 탄생부터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삶을 교회가 그대로 겹쳐서 살아달라는 부탁이다. 하느님께서 예수 안에 오셔서 시작하신 새로운 세상은 이제 교회가 겪는 탄생과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더 널리 펼쳐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교회의 삶과 신앙의 삶에 겹쳐지는 신비를 대림절 안에서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재림이다.

예수의 부활 이후에도 교회는 지금처럼 희망과 신앙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다. 외부에서는 역겨운 권력의 타락이 끝을 모르고, 내부에서는 불신과 갈등이 깊어졌다. 어떤 이들은 신앙의 희망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며 소비주의에 몸을 맡겼다. 다른 어떤 이들은 하늘만 바라보며 땅의 현실을 외면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오셨으니, 주님은 교회 안에서 머리가 되어 그 손발이 세상에 펼쳐져야 한다. 교회가 이 일을 다 하지 않는 한, 예수님의 재림은 계속 연기되고 멀어질 뿐이다.

재림의 신앙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삶의 순간마다 복음의 가치를 선택하는 일이다. 우리 삶의 작은 선택과 결정이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겪는 정치와 경제, 교육과 복지는 우리가 순간마다 선택했던 일이 쌓여서 만든 결과이다. 깨어있는 신앙은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의 복음을 되새기는 삶이다. 오래 견디는 신앙은 복음의 가치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갈등과 고난을 함께 견디는 삶이다.

깨어 견디는 교회를 향하여 신앙의 선배들은 대림절 신앙을 격려한다. ‘자, 올라가라. 하느님의 산으로. 생명을 빼앗는 무기를 꺾어 생명을 먹여 살리는 도구로 만들라. 하느님의 평화, 샬롬의 세계를 만들라.”

<성공회 신문> 2018년 11월 24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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